백인전용 열차 탔다 벌 받은 흑인, 126년만에 사면

호머 플레시와 판사 존 퍼거슨, 존 마셜 할런 대법관의 후손들이 지난 5일 미국 뉴올리언스 창조예술센터에서 열린 호머 플레시 사후 사면식에서 존 벨 에드워즈 주지사(오른쪽에서 네 번째)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AP 연합뉴스
미국에서 흑인 차별이 극심했던 1890년대에 백인 전용 열차를 탔다가 유죄 판결을 받았던 흑인 남성이 126년만에 사면됐다.
AP통신은 1892년 뉴올리언스에서 백인 전용 열차에 탔던 구두수선공 호머 플레시가 126년만에 사면됐다고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백인 전용 열차칸에 탔던 플레시는 유색 인종칸으로 옮겨 타라는 철도 안내원의 요구를 거부했다. 결국 플레시는 ‘인종 격리 차량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플레시는 인종 격리 차량법이 흑백 차별을 금지한 수정헌법 14조에 반하는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지방 판사 퍼거슨과 대립했다.
당시 대법원은 1896년 대중교통이나 호텔, 학교에서의 흑백 분리를 용인하는 ‘플레시 대 퍼거슨’ 판결을 내렸고, 플레시는 유죄를 선고받았다. 플레시 대 퍼거슨 판결은 9명의 대법관 가운데 1명이 불참하고 7명이 흑백 분리에 찬성해 ‘7 대 1’ 판결이라고도 불린다.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던 존 마샬 할란 판사는 “이 판결은 1857년 이 법정에서 내려졌던 ‘드레드 스콧 사건’에 대한 판결만큼이나 패악적이라는 사실이 훗날 밝혀질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드레드 스콧 사건’은 노예 해방을 주장하는 흑인 드레드 스콧에 대해 대법원이 “노예 또는 노예의 후손인 흑인은 결코 미국 시민이 될 수 없고, 단지 소유물에 불과하다”고 판결한 사건이다.
미국 루이지애나주 사면 위원회는 지난해 말 플레시의 사면을 권고했다. 존 벨 에드워드 주지사는 5일 플레시의 사면을 결정했다.
사면 기념식은 플레시가 체포된 장소 근처에서 진행됐다. 유일하게 플레시 편에 섰던 할란 판사의 후손인 케이트 딜링햄이 ‘리프트 에브리 보이스 앤 싱’(Lift Every Voice and Sing)을 연주했다. 이 노래는 미국 흑인들의 국가로 통하는 곡이다.
에드워드 주지사는 “플레시의 유죄 판결은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며 “부도덕적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념식에 참석한 플레시의 후손인 키스 플레시는 “우리의 조상과 앞으로 태어날 자손들에게 정말 영광인 날”이라며 감격했다.